나에게 있어 산림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다

원래 산림을 존경했다.

​내가 중학교2학년 일 때 어느 날 아빠가 새 차를 사셔서 기분 좋게 온가족이 간단한 도시락을 싸서 광릉 수목원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성급한 일반화일수도 있겠지만

당시 사회적 분위기는 자동차의 가정 내 지위는 거의 아내와 동급이었다. 가정에서 아내 보다 높은 지위를 얻은 자동차도 난 주변에서 많이 봤다.

귀하디 귀한 그 새 차에서

배가 고프다고 칭 얼 대니 엄마가 차에서 냄새 난다고 참으라고 했는데, 아버지가 기분이 좋으셨는지 ‘새끼가 배고프다는데..냄새가 대수냐 문 좀 열어 놓으면 되지!!어차피 그냥 집어 먹으면 되는 김밥인데!’

아버지의 흔치 않은 쿨내 진동이었다.

엄마는 마뜩잖은 표정으로 어쩔 수 없이 준비한 김밥과 일본식 된장국을 종이컵에 덜어주셨다.

예상대로 나는 당연히 쏟았다 ㅋㅋ, 굳어가는 아버지 표정, 엄마의 최고 단계 화 폭발

침묵과 암전 같은 상황속에 광릉 수목원 주차장에 도착해서 온가족이 닦는다고 닦고, 창문을 조금씩 열어두고 갔다 오기로 했다.

내가 어른이 되어보니 그 상황에 놓였다고 생각 하면 정말 집에 빨리 가서 실내 세차하고 싶었을 듯하다.

일단 나는 천진난만하게 열심히 뛰어 놀다 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수목원에서 대량으로 나오는 음이온 피톤치드 뭐 이런 것들 때문인지 잘은 몰라도 차에서 솔 향 같은 풀내음이 가득이었다.

엄마 아빠의 환한 표정, 살면서 몇 번 보기 힘든 표정이었다.

그 때 부터 나는 산림을 존경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2009년 12월 15일 나는 회사 임원 한 분의 반강제 호출로 동료 몇 명과 북한산 입구에 오전 6시에 모였다.

이사님 빼고는 모두 속으로는 겉과 달리 침묵과 암전 같은 속내였을 것 이다. ‘목표는 전원 백운대 완등!’

5분의 2 지점에서 나는 이미 체력이 바닥났고 포기 한다고 했다.문자 그대로 大자로 뻗었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었고, 더 가기에는 일단 복장이 적합 하지도 않다고도 읍소 했다.

그런데 그 임원분이 ‘너 당 떨어져서 그래!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1cm라도 발걸음을 내 딛어!’ 하시면서 ABC쵸콜렛 2개를 주셔서 먹었는데 거짓말처럼 내 딛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임원분이 갖고 오신 초콜릿 한봉지는 내가 다 먹고, 완등에 성공했다.

정상에 올랐을 때의 희열은 경험해본 자만이 알 것이다.

그 때 내가 북한산에 갔 어야 하는 이유는, 목표한 분기 성과가 나오지 않은 저성과자 였기 때문에 담당 임원과의 특별 시간 이었다.

영화 에서처럼 그 이후로 엄청 난 고성과자가 된 건 아니지만, 확실히 하나 깨우친 건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내게는 등산이다.

정말 다행히도 아내 역시 등산을 매우 좋아해서 야간 산행, 새벽 산행을 포함 하면 부부가 연간 20여회 등산을 하는 듯 하다.

확실히 산에 다녀오고 나서 한 일주일은 서로 이해심이 많아져서 다툼이 거의 없다^^

언젠가 시상식에서 배우 유해진씨의 수상 소감 중에 ‘항상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준 북한산아 고맙다’ 라고 하는데 울컥 했었다.

아마 유해진씨도 본인의 시대가 열리기 까지 묵묵히 버티고 올라가야만 하는 시기를 북한산 등산을 하며 시뮬레이션 하지 않았겠는 가.

나에게 산과 나무는 나를 차분히 진정시켜 내가 처한 상황 까지도 차분하게 바라보며 현명한 선택을 하게 해주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의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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